2009년 2월 21일 토요일

사형, 누가 누구를 심판하나

국민의 64%가 사형제도의 존속과 집행을 찬성한다고 한다. 64%라면 충분히 이 사회의 다수 의견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수치이며 국민 투표를 실시해도 요즘 미디어를 달구고 있는 강모 살인마는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처지다. 이 설문지가 내게 왔다면 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대를 선택했을 것이다.

 

신의 세력이 강성하고 인류가 이루어낸 모든 영광이 신의 은총으로 결부되던 그 시절, 사회가 안고 있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인간이 같은 인가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가 신의 대리인으로서 인간을 심판하고 태워 죽이는 원초적이었던 그 시대를 거쳐 이제는 법이 인간을 심판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이 모여 집단을 만들고 집단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사회가 모여 하나의 문화군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폭력을 수반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난 언제나 이 점이 우스웠다.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법이라 치자. 과연 사형제도 역시 그럴까? 사형의 비집행은 비인간화된 사회 구조와 법의 한계에 대항할수 있는 최소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특정인들에게 누군가를 심판하고 형을 집행할 자격을 주고 이들은 기계적으로 원고와 피고를 나누고 상황에 맞는 법을 집행한다. 그런데 우린 그들에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와 자격까지 주지는 않았다. 사회의 이득과 안전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는 이는 가차없이 '죽어 마땅하다'는 수식어를 달게 되는데 사형 집행에 당의성을 실어주는 이 말이 너무나 위험한 무기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수도 있다. 이 기준은 결국 다수의 기준이고 힘있는 자들의 기준이 될 공간이 크다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계층은 그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 안전을 핑계삼아 그에 반하는 세력을 합법적으로 제거할수 있다. 또한 법이라는 도구의 특성상 그 맹점을 잘 아는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철퇴가 될수도 있다. 시스템적인 이야기만을 줄창 해댔으나 이미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났고 존재해온 일들이라 더더욱 우린 경계해야 한다.

 

죽어 마땅한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린 그를 법의 이름으로 죽여서는 안된다. 어폐가 있고 모순적인 말이지만 법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를 제거한다는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발상인가.

 

 

 

 

댓글 2개:

  1. 죽을때까지 남을 떡밥이예요. 폐지론자와 존치론자.



    둘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사회가 더 각박해진단 느낌은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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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ueshine - 2009/02/24 12:54
    어려운 문제입니다 정말. 문제는 이런 논쟁거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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