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rtoon.media.daum.net/series/view/iskra/35
다음에서 <이스크라>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이충호 작가가 독자들의 의견을 작품에 반영하겠다고 선언, 등장인물의 생사를 독자 투표로 결정하겠다는데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에 한 독자는 창작물에 수용자들의 입김이 작용하게 되면 작가는 아우라를 잃는다 라는 의견을 골자로 해서 이런 이충호의 창작 방식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작가란 무엇인지, 혹은 그들이 갖는 권위는 어느정도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수십여년간 되어와서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창작품을 완성시킨 사례들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런 식으로 작가가 작품의 내용이나 전개과정을 결정하는데 있어 팬투표라는 적극적인 수단을 시도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웹2.0 이라는 흐름은 이제 너무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서 쌍방향적 매체의 영향력을 간과한다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포스트 모던이란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숭고한 영역으로 간주되는 분야에까지 매체의 영향력이 작용하게 됐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라디오, TV를 지나 인터넷, IP TV 등 다양한 매체가 커뮤니케이션 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이로인해 새로운 예술 경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예술가는 창작품이라는 매계체를 통해 수용자와 소통한다. 여지껏은 그 소통 과정이 일방향적이었기에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지킬 수 있었고 예술이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언어로 구성된 탓에 비평가라는 매계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웹이라는 열린, 쌍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매체를 통해 예술가와 수용자가 끊임없이 소통한다면 이제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그 독립적 지위를 박탈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주제의식과 메시지들은 비평가라는 매계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수용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며 수용자들이 텍스트를 오역하는 일이 발생하면 이에대해 작가는 빠르게 피드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아직까지도 예술가들과 자신이 소위 고급 문화 생활을 영위한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은 예술의 격조 높은 존엄성을 들며 예술계의 질서를 구축하려 해왔다. 이충호 작가의 이런 시도가 예술가의 자존심을 버리는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새로운 경향을 시도했을 뿐 예술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본연의 아우라를 잃은 것은 기술복제시대의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쌍방향성이라느니 해체라느니 탈구조라느니 21세기를 수놓았던 낱말들의 등장과 함께 이미 작가는 그 위상을 잃었다. 이것은 현상이며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애써 현상을 모르쇠하는 것은 어리석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쌓아온 많은 정신적 유산을 무너뜨리고 해체해왔다. 예술도 예외일수는 없다. 단, 인간이 만들어낸 그 도구를 이용해 한차원 높은 상부구조를 이룩하느냐가 이 시대 예술계가 갖게될 유일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이충호 작가의 이런 시도는 이런 예술계의 고민에 한가지 대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