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살지도 않았는데 '옛', '추억의'라는 수식어를 쓰니 심히 부끄러우나 딱히 다른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쓰기로 한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보니 지겹게 재방송해대는 모 오락 프로그램에서 손이 멈췄다. 꽤나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이미 봤던 회차였으나 과감히 복습을 하는데 '내 인생의 첫 가요'라는 간이 코너를 진행하더라.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몇몇 곡들이 있기에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어보려 한다. 내 인생의 첫 가요를 뽑는건 어려울지라도 정말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 곡들은 몇개 추려볼 예정인데 3곡에서 5곡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머리 속에 있는 곡들을 전부 포스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시작은 해봤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첫 곡을 적어보기로 한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누나가 있던 이유로 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가요를 접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동요는 못 외우는데 김원준이나 김건모의 노래는 줄줄 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을 조르고 졸라 살 수 있었던 mp3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내 취미생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소리바다를 통해 무분별한 불법 음원 공유가 당연시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돈 안들이고 음악 들을 수 있었던, 뭔가가 잘못 돌아가던 시기였다. 고로 음원이 범람하는 시기였는데 이런 환경에 비해 mp3 플레이어는 고작 32MB, 64MB의 용량만을 제공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감질나는 시대였는가. mp3 플레이어에 넣을 수 있는 곡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말 베스트 넘버를 고심해서 뽑아 플레이어에 저장했는데 늘 내 mp3 플레이어에 저장되던 곡이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였다.
사실 당시 나는 원곡이 아닌 이은미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있었다. '기억 속으로'라는 곡에 매료되어서 이은미란 보컬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녀가 부른 '서른즈음에'를 듣게 된 것이다. 원곡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곡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듣기만 했다. 그러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목소리의 남성이 부르는 '서른즈음에'를 듣게 됐다. 김광석이란다. 그가 원곡자였다. 곡은 내가 듣던 '서른즈음에'보다 훨씬 단순한 구성이었으나 울림은 더 컸다. 알고보니 이은미의 '서른즈음에'는 그녀가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Nostalgia 에 수록된 곡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너무나 좋아하던 곡의 재발견이었다. 내 mp3 플레이어의 첫 곡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한국 남성의 여러 정서를 김광석만큼 처량하고 구구절절하게, 그리고 호소력 있게 표현해내는 보컬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용필도, 이승환도, 나훈아도 이 부분에 대해선 김광석만큼 부르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당시에도 이걸 알았을까.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중학교 2학년생은 이 곡을 들으며 펑펑 울었다. 남일같지 않았다. 불과 몇년새 내게 다가올 현실같았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는 큰 위안이 됐다. 내가 10대를 지나, 그리고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어서 문득 서글퍼질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다시 힘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왜 그때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당시 김광석의 목소리는 너무나 구슬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처음으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이야 몇년 남지 않았지만 당시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서른이란 나이에 난 어떤 모습일지,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몇일간 공상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된다 라는게 좌우명이었던 내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한 곡이 내 인생을 바꿨다! 라고 말하기는 낯간지럽고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첫 가요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곡이 되야하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김광석의 앨범은 갖고 있지 않다. 박학기, 윤도현, 김건모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만 한 장 가지고 있다. 지금은 박학기가 부른 '서른즈음에'를 듣고 있다. 역시 원곡만 못하다. 아마 그 누구도 김광석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내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첫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