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7일 목요일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Dio - We Rock

2009년에 마이클 잭슨, 에디 히긴스, 2010년에 누자베스, 구루에 이어 디오까지... 음악 잘하는 명인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디오의 별세 소식을 들은 어제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처럼 멍~했었다. 사실 지갑 털린 충격도 함께 작용하긴했지만. 지금은 리마스터링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디오 2집 Last In Line 앨범은 꽤나 구하기 어려운 앨범이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음반 사이트는 죄다 이 잡듯 뒤졌더니 딱 한장 재고가 남아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결제하고 은행 문열기 무섭게 입금을 했다. 앨범이 배송되던 날, 두근 거려서 자율학습이 되질 않았다. 마음은 이미 집에서 음반을 뜯고 있는데 몸만 교실에 있다고 공부가 될리가 있나. 기다렸던 음반은 상상 이상이었다. 웹상에서 앨범을 칭찬해댔던 사람들의 글빨이 겨우 그정도 밖에 안됐나 한심스러울 정도로, 최고의 앨범이었다. 거의 한달은 그 앨범만 들었던거 같다. 그리곤 벌써 6,7년이 흘러서, 디오는 추억 속 인물로 돌아섰다.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작은 거인. 평생 We Rock 하면서 살겠습니다.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근황
1. 텍스트큐브가 없어진단다. 난 텍스트위주의 블로그를 운영하는지라 이거만한게 없었는데... 굉장히 아쉽다. 어디로 가야하나. 일단 자료 백업을 해뒀는데 갈 곳이 없구나. 네이버는 저작권 어쩌구해서 짜증나고 이글루스는 덕후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황폐해지는거 같고 티스토리는 인터페이스가 굉장히 느리다. 그냥 블로거닷컴에 남아야하나. 트위터나 마이스페이스는 전혀 흥미가 없다. 한줄 두줄 써서 뭐하겠나. 어디로 가야 하나이까~
2. 포항이 레모스 감독을 경질했다. 당연한 처사라고 본다. 이미 검증된 외인인 알미르, 모따를 영입하고 월드컵 스타 설기현을 영입했다. 게다가 아챔 우승 당시 수비의 핵이었던 김형일, 황재원을 잡았으며 김재성, 신형민 등 황금 미들 라인도 그대로 유지했다.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줬던 스테보, 데닐손이 동시에 팀을 나가면서 공격에서는 애를 먹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리그가 시작해보니 이렇게 만만한 팀이 없더라. 현재 승점 9점 리그 12위. 아직 리그가 절반을 돌지 않았지만 심각한 성적이다. K리그의 좋지 못한 풍토 중 하나가 "그래도 기다려보자"며 실력없는 감독을 방관하는 것이다. 성적, 비전, 경기력 셋 중 어느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경질하지 않는게 이상하지 않을가? 좀 더 프로다워지자. 구단 운영도, 리그 운영도. 아, 레모스 나가기 전에 승점 따내서 다행이다.
3. 투표로 4대강 사업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자라는 천주교측의 움직임이 매섭다. 그들은 '토건독재'라는 말을 썼다. 씁쓸한 일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원칙을 토건주의, 실적주의라는 용어로 표현하곤 한다. 그저 결과만 내면 된다는 식의 불도저같은 국정 운영. 과정은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주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볼 수 있게끔하는 고육지계. 우린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건가? 하기사 아직까지 박정희 대통령 잘했다고 입에 개거품 무는 어르신들 많으니 이런 말도 조심스럽다. 진보와 보수, 관점의 차이라고? 천만에. 친일파 문제와 더불어 이건 진보와 보수를 나눌 필요도 없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선 딱 한마디면 된다. 철저히 그릇되고, 잘못된 일이다.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Tracy Chapman - Baby Can I Hold You

1. 이말년은 천재다. 조석도 나름 병맛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그의 앞엔 이말년이 있다. 마치 살리에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모차르트의 거대한 벽마냥, 이말년이라는 높은 벽은 조석을 초라하게 한다. 이말년, 희대의 천재. 병맛 만화의 1인자. 장수하라.
2. 무겁다. 버겁다. 생각이 많아진다. 내려 놓고 싶은데 그러질 못한다. 이 무거운걸 짊어지고 인생 선배들은 어떻게 앞으로 나갔지? 모든 인간은 존경 받을만 하다.
3. 음담패설을 끊을수가 없다. 담배는 끊었는데 음담패설은 못끊겠다. 하루라도 음담패설을 안하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남자의 수다가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후배 녀석이 형 차라리 다시 담배 피는게 낫겠어요 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대답했다. 난 우리 선인들이 향유했던 패관문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을 뿐이라고.
4. 역시 흑형들, 아니 흑누나들의 성대는 뭔가 다르다.
5. 대전 첫승. 행복한 한주다.
2010년 4월 3일 토요일
Jamiroquai - You Give Me Something

스트레스 받아서 어디 축구 보겠어? 정말 애증의 취미생활이다. 뭐가 문제인지 이제 말하고 싶지도 않아. 이제야 문제점을 알았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더 힘이 빠진다. 그걸 이제서야 안거야!? 그나마 지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할 뿐. 몇대 몇이야? 라고 물어보는 여친님께 비기고 있다니까 와~ 양호하네 라고 말씀하시네. 오죽하면 그러겠니 이것들아. 다음엔 이겨줄꺼지? 마은 편히해. 크게 기대는 안하니까.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1무 3패, 현 대전의 문제
1. 템포의 실종
역습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 공격 템포가 시종일관 느리다. 공격 전개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 SK 와의 경기에서 대전은 3-5-2 포메이션으로 나왔는데 측면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중앙에서도 빠른 패스로 상대 수비를 끌어내지 못했다.
미들에서의 힘싸움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드필드 진영에서 힘싸움을 해줄 선수가 전무하다. 김성준은 아직 1군에서 뛸 기량이 결코 아니다. 좋게 봐줘야 활동량 많은 패서지 수비형 미들로 쓰기엔 투쟁심이나 수비 센스가 너무 떨어진다. 권집 역시 지능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지 몸으로 부딪치며 헌신적인 수비를 해주는 선수는 아니다. 이성운의 부재가 너무나 크게 다가오고 있다.
미들 장악이 안되니 사이드로 나가는 패스도 되지 않고, 되려 사이드로 빠지는 상대의 패스를 전혀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산토스가 미들로 올라와서 경합을 해주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것도 한계가 있다. 부산의 안성민이나 경남의 김근철이 올시즌 팀을 옮겼는데 이 둘 중 하나를 꼭 잡았어야 한다고 본다.
2. 감독님 줏대를 가지세요!
왕선재 감독은 계속해서 전술 성향을 바꾸고 있다. 1라운드 GS 전과 2라운드 경남전에서는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는 공격축구를 선보였고 3라운드 강원전에서는 쓰리백을 기반으로 한 수비 지향 축구를, 그리고 오늘 4라운드에서도 수비적인 축구를 했다.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대패를 하긴 했지만 1라운드 GS전 뿐이었다.
우리의 색을 만들어야 한다. 유연한 전술 변화도 좋지만 우리의 강점은 유지해야 한다. 가용할 수 있는 선수폭은 좁은데 자꾸 다른 모습의 팀을 매 경기 보여주려고 하니 경기력이 올라오질 못하는 것이다. 왕선재 감독에게는 올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투자가 있었다. 주전 멤버가 부상 당했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3. 비효율적인 영입
대전의 스쿼드가 아작난데는 김호 前 감독의 과오가 있지만 이번 시즌 대전은 정말 비효율적인 영입을 했다. 정형준, 이호 모두 드래프트 1순위 출신으로 연봉 5천만원과 잔여 계약기간 2년에 대한 보상금(이적료)이 발생하는 선수들이다. 과연 이들의 영입이 FA자격으로 GS 로 간 이윤표의 잔류보다 효율적일까? 이성운을 방출하면서 안성민이나 김근철 같은 경험있는 선수가 아닌 신인에게 허리를 맡기는게 효율적인 일일까?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총체적인 문제에 빠졌다. 분명 시즌 초반부터 강하게 나가 승점을 쌓겠다고 동계훈련 기간 왕선재 감독은 말했다. 지금 얼마만큼 자신의 계획대로 가고 있는가? 올 시즌 순위나 경기력, 둘 중 하나는 꼭 보여줘야만 왕선재 감독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3월 9일 화요일
Feeder - Feeling The Moment

수업 끝나고 맥주 한잔 마시면서 북유럽 어디는 어떻다더라 복지 좋은 어디는 어떻다더라라는 식의 상상력을 극대화한 간접경험 체험기를 쏟아냈다. 서로 실제로 가본 이는 아무도 없으나 여기저기서 수집한 정보들을 기가 막히게 조합하며 한국 사회를 질겅질겅 씹어댔다. 변화라는 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미 축적된 문화적 기반이 확고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이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열심히 씹어대야 입만 아프고 열등감만 폭발한다는걸 잘 안다. 그래서 요즘은 술자리에서도 이 나라, 이 사회에 대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는 삶의 여유가 없다는걸 꼭 말하고 싶다. 우리가 떠들어댔던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 어딘가에 사는 옌센이나 프랑스에 사는 앙리, 캐나다에 사는 채드 모두 길어봐야 80인생 사는건 똑같은데, 우리는 왜 그들만큼의 여유를 즐기지 못하면서 사는 것일까. 대학에서 로망이 있고 낭만이 있었다는건 이미 지나간 시절의 추억일 뿐이요 직장에서 유급휴가 15일 채워쓰면 욕 먹는다. 자기 삶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이라는 지상명제가 아직도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똑같이 한번 주어진 인생 살아가는데 이렇게 빡빡하게 살아서 무엇하느냐라는 생각이 들더라. 옌센이고 앙리고 채드고 다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막연히 그들의 여유가 부럽다.
웰빙이란건 결국 속도에 관한 문제다. 삶의 속도를 얼마나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느냐, 혹은 빨라진 삶의 속도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놓친 가치관들을 되찾는 것이 웰빙 열풍의 모토다. 유기농 야채 먹고 화학 방부제 들어있지 않은 음식 먹는 것이 웰빙의 참뜻은 결코 아니다. 어쩌다보니 꽤나 장문이 됐는데 너도, 나도, 형도, 누나도, 우리 모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10. 02. 27 GS전
1. 이게 정말 공격축구?
왕쌤! 공격만 하는게 공격축구인가요?? 어제 경기보고 변병주가 우리 감독으로 와있는줄 알았다. 수비가 전혀 안돼. 전반 5분만에 데얀에게 먹은 골은 정말 굴욕적인 것이었고 이후 두번째, 세번째 골도 모두 수비조직력이 흔들리면서 먹은 골이었다.
공격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알레, 바벨은 상상 이상으로 잘해주고 박성호도 이번 시즌 컨디션이 좋을거 같은 예감이다.
어제 김한섭 - 정형준 - 이호 - 우승제 가 포백을 이뤘는데 정형준, 이호는 프로 통산 두번째 경기에 나섰다. 이 둘은 시종일관 실수를 해대며 개막전을 찾은 만여명의 팬들을 가슴 아프게 했는데 박정혜가 그리울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일 모르는거라는 교훈을 남겼다.
이들의 계속되는 실책 이외에도 5골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건 미들 라인이었다. GS는 올시즌을 맞아 측면 자원을 엄청나게 보강했다. 그럼에도 대전은 GS의 측면 공격을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어제 경기 가장 큰 패인은 미들 압박의 실종이다. 대전은 김성준, 이현웅, 바벨을 중앙에 배치해 공격을 풀어갔는데 이 셋 모두 수비에 큰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아니다. 김성준의 공격 전개 능력은 이미 팀내 최고지만 수비시의 성실함에선 낙제점이다. 후반 김성준을 후방에 배치해 수비적인 롤을 부여하는 순간 팀은 자멸했다. 권집의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었다.
또 2선에서의 수비 가담이 너무 없다. 두번째 실점 장면에서 중앙 수비가 어정쩡하게 걷어낸 볼이 GS 의 에스테베즈에게로 흘렀고 마크가 없는 상태에서 슈팅을 날렸다. 에스테베즈는 2선에서 침투하며 기회를 만들었는데 우리 2선은 왜 그를 놓쳤나? 최종수비라인과 2선 미들라인과의 소통이 정말 되고있는건지 궁금한 대목이었다.
2.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올시즌 대전의 공격진은 막강하다. 바벨과 알레는 이미 리그 최고 수준의 용병으로 자리잡았고 박성호도 이제서야(?) 최전방 톱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창현은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수비시 악착같이 가담하며 팀에 보탬이 됐고 김성준, 이현웅의 공격 가담 능력과 볼 전개 능력도 상상 이상이었다. 이현웅은 프로 데뷔전에서 골을 넣으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는데 황진산, 이경환 등 또래 동료 선수들과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신예 곽창희가 연습경기에서 너무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권혁진의 조기 제대는 팀 공격력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팀을 새로 키운다는 것, 특히나 수비조직력을 다듬는다는 것은 한두시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직은 기다릴 때이지만 아쉬운건 신예 선수들 위주의 보강은 어제 경기와같은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더 들더라도 한명 정도는 경험 많은 수비수 전문 자원을 영입했어야 한다. 이 점이 상당히 아쉽다.
어쨌든 왕쌤, 윤덕여 코치님, 그리고 선수들 믿습니다!
2010년 2월 26일 금요일
영화 몇편

데이비드 게일(The Life Of David Gale , 2003) - 앨런 파커
본지는 꽤 된 영화다. 이렇게 포스팅하는 이유는 오늘 계속해서 위헌 논란이 있던 사형제도가 합헌 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난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입이 거친탓에 "저런 놈은 죽어야돼" 라는 말을 자주하긴 하지만 전 인류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느니 생명의 고귀함이라느니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사형제도를 존속시키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사형제도가 공권력이 사회 구성원의 목숨을 박탈한다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충분히 악용될 수 있는 구조다. 물론 사회를 유지하는데 있어 처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처벌이라함은 범죄자나 부적응자들의 재사회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영구히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법은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데' 전제를 둔 것이지 그 외 상황까지 관할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들 반전 영화로 알려져 있는 <데이비드 게일>은 사형제도의 맹점을 데이비드 게일이란 인물의 삶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영화는 오해와 실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법이란 도구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에 일말의 오해와 실수가 존재할수 없다는 것은 인간들의 지독한 오만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해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들의 의견에도 타당성은 있다. 다만 인간은 늘 실수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들이 인지해줬으면 한다.

평행이론 (Parallel Life , 2010) - 권호영
여친님과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본 영화. 공포영화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권호영 감독의 작품답게 러닝 타임 내내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효과들이 관객을 놀라게 한다. 제법 흥미로운 소재를 잡았으나 영화에 매력적으로 입히는데는 실패한듯 하다. 스릴러 영화를 쓰기에는 감독의 내공이 아직 약하다는 말이다. 물론 공포영화라고 글이 후져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스릴러 영화 자체가 관객과 스크린 속 배우가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매력을 지니기 때문에 스릴러 영화의 글이 여타 다른 장르의 영화의 글보다 세밀함과 정교함을 요할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평행이론>은 좋은 소재를 좋은 글로 살리지 못했는데 떨어지는 몰입도를 붙잡기 위해 공포영화의 연출법을 덕지덕지 붙여놨고 막판의 반전을 위해 억지로 스토리를 비틀어댔다. 다행히 전체적인 틀이 흔들리진 않았지만 세세한 설정이 약해서 영화가 끝나도 개운한 맛이 없다. 즉, 스릴러다운 맛이 전혀 없는 영화다. 스릴러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각종 고전 공포영화의 오마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포영화의 소스는 충실히 담고 있다. 공포영화를, 그중에서도 고전의 추억을 느끼고 싶은 분이 있다면 강추다.

캐딜락 레코즈 (Cadillac Records , 2008) - 다넬 마틴
지금이야 추억의 기종인 캐딜락이 최신 기종이던 시절이 있었다. 캐딜락을 몰 수 있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잡을만큼 캐딜락이 굉장한 차였던 시절이 있었다. <캐딜락 레코즈>는 그 시절을 살아갔던 흑인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무디 워터스에서 하울링 울프, 에타 제임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에 이르기까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음악계를 조명하고 있다. <캐딜락 레코즈>는 여느 음악영화가 그러하듯 노래 잘하는 배우들을 대거 섭외해 풍성한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다만 아쉽게도 영화다운 맛은 없다.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라는 엄숙한 자막으로 시작하는 <캐딜락 레코즈>는 인물간의 갈등구조나 스토리의 전환과 같은 극적 요소를 배제하고 정말 실화를 실화처럼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고 밋밋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블루스에서 로큰롤, 그리고 락으로 이어지는 팝음악계의 계보를 시청각 자료로 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 이상을 기대하고 보지는 말자.
한가지 에피소드를 덧붙이자면, 에타 제임스 역을 맡았던 비욘세 놀즈는 자신이 연기한 생존 인물에게 엄청난 혹평을 들어야 했다. 재미있는건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노래를 못해서 혹평을 들은 것. 극중에 비욘세가 에타 제임스의 명곡 At Last 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에타 제임스는 내 노래를 그따위로 밖에 못부르느냐고 혹평을 했다고 한다. 비욘세도 노래 꽤나 하는 가수인데 대선배 가수의 혹평 앞에 어떤 기분이었을까. 선배의 노래를 부른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몇가지 근황
1. 2010학번이 입학했다. 무려 91년생이란다. 우와... 나도 나이 많이 먹었구나 라고 실감하는 순간. 나 1,2학년 다닐 때 90년대 학번이었던 형들이 우리가 너네랑 놀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을 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 형들이 했던 말을 새내기들에게 하고 있는걸 발견하니 기분이 묘하더라. 내가 상상해온 어른의, 선배의 모습과 난 얼마나 닮아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2. 악연도 인연이라고 얼굴 마주치기 굉장히 껄끄러운 사람이 옆옆 방으로 이사왔다. 서로 얼굴 마주쳐서 좋을게 없는 사이인데 무슨 인연으로 같은 고시원에 살게 됐는지 신기할 뿐이다. 학교 앞에 즐비한 하고많은 고시원 중에 하필 이 고시원에 오게되다니... 난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한번 싫어하게된 상대는 지구가 반쪽 나도 싫어한다. 다시 좋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너무나 냉랭하게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최대한 피하는 주의다. 주위 사람들은 너네 전생에 부부였나보다 라며 즐거워했지만 기분이 영 좋지 않다.
3. 여자친구가 돌아왔다. 2006년부터 연애를 시작했으니 햇수로 5년째다. 여자친구가 해외에 가있던 기간과 내가 군복무했던 시기를 빼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해왔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굉장히 편한 상대가 됐다는걸 느낀다. 혹자는 연애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서로에 대한 신비감 내지는 비밀을 간직해야만 오랜 기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데 워낙 둔한 성격이라 지능적인 연애를 할 자신은 없다. 다만 지금처럼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오랜 시간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Andrew W.K - Party Hard

긴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왔다. 개강까진 2주가량 남았으니 뭐든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주의기 때문에 일찍 올라왔다. 실은 집에서 워낙 심심해서 무리해서 일찍 올라왔다. 참 결심이 많았다. 하던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하고 도서관가서 책도 빌려야되겠다고 다짐하고 올라왔건만 오자마자 와우를 이틀 해버리는 바람에 계획은 수포로. 마음 먹은걸 이루면서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느낀 몇일간이었다. 어쨌든 2010년 새학기도 즐겁게 공부하고 좋은 사람 많이 만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매일매일이 파티인 것처럼.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Anita Baker - You're My Everything

Chapter8 의 일원으로 데뷔해 1983년 솔로 앨범을 발매한 Anita Baker 는 누구보다 풍부한 감성을 지닌 보컬이다. 컨템퍼러리 재즈를 기반으로 한 R&B 사운드를 히트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그녀는 88, 90, 95년 그래미 최우수 여성 R&B 보컬상을 수상했다. 안정적인 중저음과 탁월한 감정 표현, 그리고 중성적인 보이스로 많은 사랑을 받은 Anita Baker 의 키는? 프로필 상으로 150cm. 58년생이고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작은 키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작은 체구를 한껏 울려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하다. 홍대 루저녀에서 어쩌다가 Anita Baker 로 넘어오긴 했는데 키 작은 이들도, 키 큰 이들도 모두가 아름답다.
2010년 2월 7일 일요일
배철수 아저씨가 뽑은 100개의 음반
http://music.aladdin.co.kr/shop/wbrowse.aspx?CID=36872&BrowseTarget=List
배철수의 음악캠프 20주년을 기념해서 배철수 아저씨가 직접 선정한 100개의 팝 명반들이다. 짧지만 위트있는 커멘트가 인상적이다. 배철수 아저씨 주관적 견해가 강한지라 종전에 우리가 봐왔던 음악 전문 잡지나 평론가들의 칼럼에 이름을 올리던 음반이 빠져있는 경우도 있고 의외의 음반이 들어와있는 경우도 있다. 하기사 음반이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데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할수 없겠지만. 대강 살펴보니 들어본 앨범이 반도 안되는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하나하나 들어봐야 겠다.
굳이 팝을 들어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 음악취향을 남에게 걍요하거나 추천하는 편은 아닌데도 이런 질문을 받는 이유가 뭘까. 내가 굉장히 토속적으로 생겨서일까. 어쨌든 난 음악 듣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팝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음계 체계는 서구에서 온 것이다. 개항기 서구 음악의 유입과 함께 나타난 창가문학의 발생과정과 가사문학의 변모양상을 억지로 끼워맞춰 말을 만들면 우리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이음새를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이런 억지를 부려가며 역사를 재구성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확실히 서구음악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고 우리가 그 양식을 받아들여 수용하게 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앗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팝 음악을 통해 배울 것이 많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음악시장의 인프라나 팬으로서 음악을 향유하는 자세와 창작자, 제작자로서 음악을 만드는 자세 등 아직은 그들을 벤치마킹할 때다. 몇몇 가수가 해외에서 활약한도고 해서 우리 음악 수준이 크게 진일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퇴보한 부분이 더 많은데 배우려는 자세는 과거보다 많이 사라졌다.
인디밴드의 음악을 도둑질해서 버젓이 메이저에 나와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신인이 있질 않나 천재니 싱어송라이터니 하는 감당하지도 못할 허울에 시달려 유명 곡들을 교묘히 짜집기 해서 자기가 만든 것인양 으스대는 비양심적 양아치도 있다. 노래를 하기 위해 가수가 된 것이 아니라 연예계에 진출하기 위해 가수를 한다. 공연이 아닌 방송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방송이 자신의 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생계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건 한국 방송산업의 특성을 고려하고서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맥락이다.
아직은 배울 때다. 이렇게 말하면 문화의 상대성을 들먹이며 서구의 것은 양질의 문화고 국산은 저질 문화냐고 투덜대는 이들이 있다. 그런게 아니라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범주 내에서 수준 높은 것과 수준 낮은 것을 따지자는 것이다. 예술 작품들 간에는 분명 수준 격차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차르트같은 천재가 여러 전설과 함께 오랜 시간 기억되는 것이다. 수준 높은, 더 잘 된 음악을 듣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허접한 음악들을 듣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괜히 옛날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Michael Bolton - Love Is A Wonderful Thing

신인가수들의 표절문제가 계속해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좀 심했더라. 내가 느끼는 한국 가요계에 대해서 유감이라는 제목을 달아 길게 써나가다가 창을 닫았다.
"옛날 노래가 좋았다." 라는 말을 꺼내는건 어쩌면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일수도 있고 과거 뮤지션들이 좋은 멜로디 라인을 선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유행에 대한 반발심리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가요계에 정이 안가는건 '가수'라고 부를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인거 같다.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은 정말 오만하고 무책임한 말이다. 이제 대중은 가수를 공연장이나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만난다. 워낙에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다보니 노래에 집중할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부족하신가보다. 글이 또 길어지려하니 이만 줄인다. 이제 가수와 엔터테이너를 확실히 구분해야할 시대가 왔다. 누가 이런 추세에 돌을 던지겠나. 이런 추세가 제작자, 가수, 대중 모두의 합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는데.
어쩌면 이건 한국 가요계의 문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극적인 한 소절을 계속 반복하는 일명 후크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2000년대 미국 팝씬의 주도적인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묻고싶다. 21세기 들어와서 정말 노래 잘하는 보컬이 몇명이나 등장했나? 정말 음악 잘하는 스타가 몇명이나 등장했나? 열 손가락 채우기 힘들 것이다.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공부의 신
참 노골적인 네이밍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나온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입시를 전면에 내세운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현재의 과열된 입시풍토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승리자가 되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하긴 입시라는 말이 교육을 대체하게 된건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사람들은 단지 이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어릴 때 부모님께 "공부 안하면 나이 먹어서 고생한다."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애둘러 표현한 것인데 드라마에선 입시생들을 상대로 무차별하고 직설적으로 사회의 진실을 쏟아 붓는다. "공부 못하는 놈은 평생 공부 잘하는 놈한테 이용만 당하다 인생 마무리한다." 물론 입시생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살에 시리게 와닿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뼈 저리게 이 불편하고 잔인한 진실을 깨닫는데는 그로부터 불과 몇년이 걸리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드라마가 나아갈지 모르겠지만 좀 더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나갔으면 한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선 진실과 직면해서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꿈과 우정, 사랑이 넘치는 학교는 예전에 사라졌다. 아니 역사상 단 한 곳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계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최종 목표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를 알아야 한다.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미 우리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한다고 어떤 대안이 나오겠나. 이런 점에서 <공부의 신>은 어쩌면 큰 성과를 낼지도 모르겠다.
<공부의 신>의 후속작으로는 <취업의 신>이 나오면 어떨까. 이번엔 대학의 이야기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무너뜨려야 한다는 지식의 상아탑이자 캠퍼스의 로망이 살아있는 대학은 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냐. 상경계열에 올 점수가 안되면 인문계열에 온단다. 왜? 취업에 불리하니까. 적성이 아니라 취업에 유리한 과를 찾아 수험생들이 몰린다. 전공 공부는 뒷전이다. 전공 공부를 학점을 받기 위한 스펙 쌓기 일환으로 여기는 대학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나도 다를게 없다. 취업에 가산점이 된다는 활동만 줄곧 찾아 다닌다. 대학교에 와서, 대학생일 때만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분명 많으리라 본다. 난 지금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포기한 것들이 미래의 나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져다줄까? 모를 일이다.
+ 긴 글을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하나 더 열었다. 얼마나 더 쓸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할 얘기가 많아지면 그쪽을 이용하려고 한다.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추억의 가요 Vol.2
기억을 더듬어보는 두번째 시간. 이번엔 2005년, 대학교 1학년 때. 난 남고를 나와서 학창시절 이성과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밤 11시 30분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바깥으로는 나돌 일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이성과의 교류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굉장한 모범생으로 보일지 모르는데 맞다. 나 모범생이었다. 학교 열심히 다니고 사고 안치면 누구나 모범생이라는 내 기준에선 난 전국 제일의 모범생이다.
어쨌든 2005년에 들어서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됐는데 이것도 해본 놈들이나 하지 처음하는 놈은 몰라서 못하겠더라. 거기다 원체 밖에 나다니기 귀찮아하는 게으른 심성과 장거리 연애라는 악조건이 겹쳐지면서 만남을 지속하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과 인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뭐가 그리 귀찮았는지 모르겠다. 짧은 연애를 마무리하고 혼자 방에 누워서 담배 한대 피고 있는데 굉장히 가슴이 먹먹해지더라. 실제 연애 기간은 짧았어도 서로 안지는 꽤 오래됐었기에 나름 정이 쌓였는가보다 했는데 헤어지고 몇주간은 극심한 소화불량이 시달려야만 했다. 영양보충을 술과 안주로 했으니 성적은 개판이었고 통장 잔고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늘 담배 한대 물고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렸다.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몇번이나 휴대전화를 집어 던졌다가 집어들었다. 결국 이건 아니지.. 라며 이어폰을 꽂고 클래지콰이의 After Love 를 거의 자동으로 재생했다.

2004년 <Instant Pig> 앨범으로 데뷔한 클래지콰이의 등장은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지금이야 트랜스에서 시부야계, 하우스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DJ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소위 DJ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설사 있다해도 마이너 무대의 클럽씬을 주축으로 활동하는 이들이었고 과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테크노 열풍만한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던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래지콰이의 데뷔와 그들의 성공은 향후 한국 음악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포스팅한 After Love 는 1집 앨범이 아닌 리믹스 앨범인 <ZBAM>에 수록된 곡이다. 리믹스라는 부제 달고 나오는 앨범은 사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주의인데 우연히 들어본 이 앨범, 정말 괜찮더라. 원곡이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 곡이라면 리믹스된 After Love 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메인으로 했고 호란 혼자 노래를 한다. 알렉스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전혀 없지만 호란 혼자 노래하는게 이 곡에게는 잘 어울린다. 아무튼 마무리할 시간.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던 우정을 나누던 혹은 미워하던 그 감정이 영원할수는 없는거 같다. 이 곡은 내 짧은 첫사랑의 기억과 연관되어있다. 감사의 표시로 풀네임으로 명명해주자. 클래지콰이 - After Love (Female Version)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추억의 가요 Vol.1
별로 살지도 않았는데 '옛', '추억의'라는 수식어를 쓰니 심히 부끄러우나 딱히 다른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쓰기로 한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보니 지겹게 재방송해대는 모 오락 프로그램에서 손이 멈췄다. 꽤나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이미 봤던 회차였으나 과감히 복습을 하는데 '내 인생의 첫 가요'라는 간이 코너를 진행하더라.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몇몇 곡들이 있기에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어보려 한다. 내 인생의 첫 가요를 뽑는건 어려울지라도 정말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 곡들은 몇개 추려볼 예정인데 3곡에서 5곡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머리 속에 있는 곡들을 전부 포스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시작은 해봤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첫 곡을 적어보기로 한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누나가 있던 이유로 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가요를 접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동요는 못 외우는데 김원준이나 김건모의 노래는 줄줄 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을 조르고 졸라 살 수 있었던 mp3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내 취미생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소리바다를 통해 무분별한 불법 음원 공유가 당연시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돈 안들이고 음악 들을 수 있었던, 뭔가가 잘못 돌아가던 시기였다. 고로 음원이 범람하는 시기였는데 이런 환경에 비해 mp3 플레이어는 고작 32MB, 64MB의 용량만을 제공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감질나는 시대였는가. mp3 플레이어에 넣을 수 있는 곡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말 베스트 넘버를 고심해서 뽑아 플레이어에 저장했는데 늘 내 mp3 플레이어에 저장되던 곡이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였다.

사실 당시 나는 원곡이 아닌 이은미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있었다. '기억 속으로'라는 곡에 매료되어서 이은미란 보컬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녀가 부른 '서른즈음에'를 듣게 된 것이다. 원곡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곡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듣기만 했다. 그러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목소리의 남성이 부르는 '서른즈음에'를 듣게 됐다. 김광석이란다. 그가 원곡자였다. 곡은 내가 듣던 '서른즈음에'보다 훨씬 단순한 구성이었으나 울림은 더 컸다. 알고보니 이은미의 '서른즈음에'는 그녀가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Nostalgia 에 수록된 곡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너무나 좋아하던 곡의 재발견이었다. 내 mp3 플레이어의 첫 곡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한국 남성의 여러 정서를 김광석만큼 처량하고 구구절절하게, 그리고 호소력 있게 표현해내는 보컬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용필도, 이승환도, 나훈아도 이 부분에 대해선 김광석만큼 부르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당시에도 이걸 알았을까.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중학교 2학년생은 이 곡을 들으며 펑펑 울었다. 남일같지 않았다. 불과 몇년새 내게 다가올 현실같았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는 큰 위안이 됐다. 내가 10대를 지나, 그리고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어서 문득 서글퍼질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다시 힘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왜 그때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당시 김광석의 목소리는 너무나 구슬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처음으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이야 몇년 남지 않았지만 당시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서른이란 나이에 난 어떤 모습일지,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몇일간 공상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된다 라는게 좌우명이었던 내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한 곡이 내 인생을 바꿨다! 라고 말하기는 낯간지럽고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첫 가요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곡이 되야하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김광석의 앨범은 갖고 있지 않다. 박학기, 윤도현, 김건모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만 한 장 가지고 있다. 지금은 박학기가 부른 '서른즈음에'를 듣고 있다. 역시 원곡만 못하다. 아마 그 누구도 김광석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내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첫 목소리였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말 많은 세종시
지금 정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정부처 이전이라는 원안이 백지화되고 교육과학경제 도시 세종시를 기획 중이란다. 교육에 과학에, 거기다 경제까지.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을텐데. 연초부터 무슨 욕심을 이리 부리는지.
어떤 형태로던 인구를 분산시킬 필요는 있다. 현재 서울 경기권에 과도하게 인구가 몰려있으며 모든 산업, 문화 요소들이 그에 따라 몰려있다. 후자가 먼저 생성되어 전자가 따라온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우스갯소리로 나라가 '서울민국'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것은 이미 문제점이 가시적으로 드러났음을 뜻하는게 아닐까 한다. 인구 분산과 지방경기 활성화의 목적으로 행정부처를 이전하려는 원안이 백지화되며 정부는 롯데, 삼성, 웅진, 한화 등의 국내 기업과 해외기업 SSF를 유치해 2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사람이 몰려야 일자리가 생기는거 아냐?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행정부처 이전을 포함한 원안에서도 과연 세종시가 원 취지를 충족시킬만한 인구를 모을 수 있느냐를 놓고 각종 심야 토론 프로그램을 달궜는데 이번 세종시 수정안 발표는 더 많은 논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행정부처 이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부처 이전은 실제적인 수도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남하 정책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지금껏 우리는 북진 정책을 시행해왔다. 형태가 달랐을 뿐 북한과의 통일을 목적으로 한 북진정책이 정부 수립 이후 정권의 일관된 행보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도의 기능을 남쪽으로 내린다면 그 역사성을 위배하게 된다. 이는 북한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틀을 자칫 바꿀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을 위시로한 산업체만 이전한단다. 주거지가 아닌 대규모 공단을 세워놓고 거기에 인구가 몰릴 것을 기대한단다. 우린 나라 한복판에 세워질 거대한 공장 집결지를 보게될지도 모르겠다.
원안 백지화를 놓고 말들이 많다. 4대강 정비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쏟기 위해 원안을 백지화했다는 의견에서부터 결국 서울, 중심지 이기심이 발동했다는 말까지. 무엇이 민심인지 모를 일이다. 서로에 대한 끝없는 불신과 이기심이 세상에 가득 찬 느낌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향을 잃은 오발탄처럼 연초부터 한국은 어지럽다.
2010년 1월 6일 수요일
Elton John -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닷새만에 집 밖으로 나가니 몇일간의 강설로 길이 온통 얼어있었다. 햇살이 따스해서 다행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깎지 않아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가리고 우유와 참치캔을 사러 슈퍼로 향했다. 아저씨가 어김없이 묻는다. "군대 다녀왔지?" 그럼요. "취직해야지. 어디 생각하고 있냐?" 글쎄요. 웃어버리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먹먹해진다. 새해에는 좀 더 여유로워지기로 마음 먹었는데 이 여유가 주변에는 나태로 비쳐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햇살을 맞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어왔다. 날 비추는 이 햇살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소서.
물론 노래의 가사는 이런 내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