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7일 수요일

Michael Bolton - Love Is A Wonderful Thing

신인가수들의 표절문제가 계속해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좀 심했더라. 내가 느끼는 한국 가요계에 대해서 유감이라는 제목을 달아 길게 써나가다가 창을 닫았다.

 

"옛날 노래가 좋았다." 라는 말을 꺼내는건 어쩌면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일수도 있고 과거 뮤지션들이 좋은 멜로디 라인을 선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유행에 대한 반발심리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가요계에 정이 안가는건 '가수'라고 부를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인거 같다.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은 정말 오만하고 무책임한 말이다. 이제 대중은 가수를 공연장이나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만난다. 워낙에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다보니 노래에 집중할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부족하신가보다. 글이 또 길어지려하니 이만 줄인다. 이제 가수와 엔터테이너를 확실히 구분해야할 시대가 왔다. 누가 이런 추세에 돌을 던지겠나. 이런 추세가 제작자, 가수, 대중 모두의 합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는데.

 

어쩌면 이건 한국 가요계의 문제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극적인 한 소절을 계속 반복하는 일명 후크송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2000년대 미국 팝씬의 주도적인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묻고싶다. 21세기 들어와서 정말 노래 잘하는 보컬이 몇명이나 등장했나? 정말 음악 잘하는 스타가 몇명이나 등장했나? 열 손가락 채우기 힘들 것이다.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공부의 신

참 노골적인 네이밍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나온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입시를 전면에 내세운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현재의 과열된 입시풍토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승리자가 되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하긴 입시라는 말이 교육을 대체하게 된건 꽤나 오래전의 일이다. 사람들은 단지 이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어릴 때 부모님께 "공부 안하면 나이 먹어서 고생한다."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애둘러 표현한 것인데 드라마에선 입시생들을 상대로 무차별하고 직설적으로 사회의 진실을 쏟아 붓는다. "공부 못하는 놈은 평생 공부 잘하는 놈한테 이용만 당하다 인생 마무리한다." 물론 입시생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살에 시리게 와닿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뼈 저리게 이 불편하고 잔인한 진실을 깨닫는데는 그로부터 불과 몇년이 걸리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드라마가 나아갈지 모르겠지만 좀 더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나갔으면 한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선 진실과 직면해서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꿈과 우정, 사랑이 넘치는 학교는 예전에 사라졌다. 아니 역사상 단 한 곳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계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최종 목표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를 알아야 한다.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미 우리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한다고 어떤 대안이 나오겠나. 이런 점에서 <공부의 신>은 어쩌면 큰 성과를 낼지도 모르겠다.

 

<공부의 신>의 후속작으로는 <취업의 신>이 나오면 어떨까. 이번엔 대학의 이야기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무너뜨려야 한다는 지식의 상아탑이자 캠퍼스의 로망이 살아있는 대학은 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냐. 상경계열에 올 점수가 안되면 인문계열에 온단다. 왜? 취업에 불리하니까. 적성이 아니라 취업에 유리한 과를 찾아 수험생들이 몰린다. 전공 공부는 뒷전이다. 전공 공부를 학점을 받기 위한 스펙 쌓기 일환으로 여기는 대학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나도 다를게 없다. 취업에 가산점이 된다는 활동만 줄곧 찾아 다닌다. 대학교에 와서, 대학생일 때만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분명 많으리라 본다. 난 지금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포기한 것들이 미래의 나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져다줄까? 모를 일이다.

 

+ 긴 글을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하나 더 열었다. 얼마나 더 쓸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할 얘기가 많아지면 그쪽을 이용하려고 한다.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추억의 가요 Vol.2

기억을 더듬어보는 두번째 시간. 이번엔 2005년, 대학교 1학년 때. 난 남고를 나와서 학창시절 이성과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밤 11시 30분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라 바깥으로는 나돌 일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이성과의 교류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굉장한 모범생으로 보일지 모르는데 맞다. 나 모범생이었다. 학교 열심히 다니고 사고 안치면 누구나 모범생이라는 내 기준에선 난 전국 제일의 모범생이다.

 

어쨌든 2005년에 들어서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됐는데 이것도 해본 놈들이나 하지 처음하는 놈은 몰라서 못하겠더라. 거기다 원체 밖에 나다니기 귀찮아하는 게으른 심성과 장거리 연애라는 악조건이 겹쳐지면서 만남을 지속하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과 인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뭐가 그리 귀찮았는지 모르겠다. 짧은 연애를 마무리하고 혼자 방에 누워서 담배 한대 피고 있는데 굉장히 가슴이 먹먹해지더라. 실제 연애 기간은 짧았어도 서로 안지는 꽤 오래됐었기에 나름 정이 쌓였는가보다 했는데 헤어지고 몇주간은 극심한 소화불량이 시달려야만 했다. 영양보충을 술과 안주로 했으니 성적은 개판이었고 통장 잔고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늘 담배 한대 물고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렸다.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몇번이나 휴대전화를 집어 던졌다가 집어들었다. 결국 이건 아니지.. 라며 이어폰을 꽂고 클래지콰이의 After Love 를 거의 자동으로 재생했다.

2004년 <Instant Pig> 앨범으로 데뷔한 클래지콰이의 등장은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지금이야 트랜스에서 시부야계, 하우스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DJ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소위 DJ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설사 있다해도 마이너 무대의 클럽씬을 주축으로 활동하는 이들이었고 과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테크노 열풍만한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던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래지콰이의 데뷔와 그들의 성공은 향후 한국 음악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포스팅한 After Love 는 1집 앨범이 아닌 리믹스 앨범인 <ZBAM>에 수록된 곡이다. 리믹스라는 부제 달고 나오는 앨범은 사지도 듣지도 않는다는 주의인데 우연히 들어본 이 앨범, 정말 괜찮더라. 원곡이 알렉스와 호란의 듀엣 곡이라면 리믹스된 After Love 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메인으로 했고 호란 혼자 노래를 한다. 알렉스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전혀 없지만 호란 혼자 노래하는게 이 곡에게는 잘 어울린다. 아무튼 마무리할 시간.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던 우정을 나누던 혹은 미워하던 그 감정이 영원할수는 없는거 같다. 이 곡은 내 짧은 첫사랑의 기억과 연관되어있다. 감사의 표시로 풀네임으로 명명해주자. 클래지콰이 - After Love (Female Version)

 

누나 내가 격하게 좋아해요. 인연되면 언제 만나서 쇠주나 한잔해요. 돈 잘버는 누나가 쏘시고.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추억의 가요 Vol.1

별로 살지도 않았는데 '옛', '추억의'라는 수식어를 쓰니 심히 부끄러우나 딱히 다른 어휘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쓰기로 한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보니 지겹게 재방송해대는 모 오락 프로그램에서 손이 멈췄다. 꽤나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이미 봤던 회차였으나 과감히 복습을 하는데 '내 인생의 첫 가요'라는 간이 코너를 진행하더라.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몇몇 곡들이 있기에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어보려 한다. 내 인생의 첫 가요를 뽑는건 어려울지라도 정말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서 잊혀지지 않는 곡들은 몇개 추려볼 예정인데 3곡에서 5곡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머리 속에 있는 곡들을 전부 포스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시작은 해봤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첫 곡을 적어보기로 한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누나가 있던 이유로 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가요를 접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동요는 못 외우는데 김원준이나 김건모의 노래는 줄줄 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을 조르고 졸라 살 수 있었던 mp3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내 취미생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소리바다를 통해 무분별한 불법 음원 공유가 당연시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돈 안들이고 음악 들을 수 있었던, 뭔가가 잘못 돌아가던 시기였다. 고로 음원이 범람하는 시기였는데 이런 환경에 비해 mp3 플레이어는 고작 32MB, 64MB의 용량만을 제공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감질나는 시대였는가. mp3 플레이어에 넣을 수 있는 곡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말 베스트 넘버를 고심해서 뽑아 플레이어에 저장했는데 늘 내 mp3 플레이어에 저장되던 곡이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였다.

사실 당시 나는 원곡이 아닌 이은미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있었다. '기억 속으로'라는 곡에 매료되어서 이은미란 보컬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녀가 부른 '서른즈음에'를 듣게 된 것이다. 원곡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곡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듣기만 했다. 그러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목소리의 남성이 부르는 '서른즈음에'를 듣게 됐다. 김광석이란다. 그가 원곡자였다. 곡은 내가 듣던 '서른즈음에'보다 훨씬 단순한 구성이었으나 울림은 더 컸다. 알고보니 이은미의 '서른즈음에'는 그녀가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Nostalgia 에 수록된 곡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너무나 좋아하던 곡의 재발견이었다. 내 mp3 플레이어의 첫 곡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한국 남성의 여러 정서를 김광석만큼 처량하고 구구절절하게, 그리고 호소력 있게 표현해내는 보컬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용필도, 이승환도, 나훈아도 이 부분에 대해선 김광석만큼 부르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당시에도 이걸 알았을까.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중학교 2학년생은 이 곡을 들으며 펑펑 울었다. 남일같지 않았다. 불과 몇년새 내게 다가올 현실같았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는 큰 위안이 됐다. 내가 10대를 지나, 그리고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어서 문득 서글퍼질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다시 힘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왜 그때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당시 김광석의 목소리는 너무나 구슬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처음으로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이야 몇년 남지 않았지만 당시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서른이란 나이에 난 어떤 모습일지,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몇일간 공상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된다 라는게 좌우명이었던 내게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한 곡이 내 인생을 바꿨다! 라고 말하기는 낯간지럽고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첫 가요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곡이 되야하지 않을까.

 

사실 지금도 김광석의 앨범은 갖고 있지 않다. 박학기, 윤도현, 김건모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만 한 장 가지고 있다. 지금은 박학기가 부른 '서른즈음에'를 듣고 있다. 역시 원곡만 못하다. 아마 그 누구도 김광석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내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첫 목소리였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말 많은 세종시

지금 정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정부처 이전이라는 원안이 백지화되고 교육과학경제 도시 세종시를 기획 중이란다. 교육에 과학에, 거기다 경제까지.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을텐데. 연초부터 무슨 욕심을 이리 부리는지.

 

어떤 형태로던 인구를 분산시킬 필요는 있다. 현재 서울 경기권에 과도하게 인구가 몰려있으며 모든 산업, 문화 요소들이 그에 따라 몰려있다. 후자가 먼저 생성되어 전자가 따라온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우스갯소리로 나라가 '서울민국'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것은 이미 문제점이 가시적으로 드러났음을 뜻하는게 아닐까 한다.  인구 분산과 지방경기 활성화의 목적으로 행정부처를 이전하려는 원안이 백지화되며 정부는 롯데, 삼성, 웅진, 한화 등의 국내 기업과 해외기업 SSF를 유치해 2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사람이 몰려야 일자리가 생기는거 아냐?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행정부처 이전을 포함한 원안에서도 과연 세종시가 원 취지를 충족시킬만한 인구를 모을 수 있느냐를 놓고 각종 심야 토론 프로그램을 달궜는데 이번 세종시 수정안 발표는 더 많은 논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행정부처 이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부처 이전은 실제적인 수도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남하 정책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지금껏 우리는 북진 정책을 시행해왔다. 형태가 달랐을 뿐 북한과의 통일을 목적으로 한 북진정책이 정부 수립 이후 정권의 일관된 행보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도의 기능을 남쪽으로 내린다면 그 역사성을 위배하게 된다. 이는 북한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틀을 자칫 바꿀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을 위시로한 산업체만 이전한단다. 주거지가 아닌 대규모 공단을 세워놓고 거기에 인구가 몰릴 것을 기대한단다. 우린 나라 한복판에 세워질 거대한 공장 집결지를 보게될지도 모르겠다.

 

원안 백지화를 놓고 말들이 많다. 4대강 정비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쏟기 위해 원안을 백지화했다는 의견에서부터 결국 서울, 중심지 이기심이 발동했다는 말까지. 무엇이 민심인지 모를 일이다. 서로에 대한 끝없는 불신과 이기심이 세상에 가득 찬 느낌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향을 잃은 오발탄처럼 연초부터 한국은 어지럽다.

2010년 1월 6일 수요일

Elton John -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닷새만에 집 밖으로 나가니 몇일간의 강설로 길이 온통 얼어있었다. 햇살이 따스해서 다행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깎지 않아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가리고 우유와 참치캔을 사러 슈퍼로 향했다. 아저씨가 어김없이 묻는다. "군대 다녀왔지?" 그럼요. "취직해야지. 어디 생각하고 있냐?" 글쎄요. 웃어버리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먹먹해진다. 새해에는 좀 더 여유로워지기로 마음 먹었는데 이 여유가 주변에는 나태로 비쳐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햇살을 맞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어왔다. 날 비추는 이 햇살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소서.

 

물론 노래의 가사는 이런 내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