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Rosenberg Trio - For Sephora

학교 근처에 조용한 술집을 발견했다. 문고리가 수도꼭지로 되어있다. DIY 가구들이 즐비하다. 서른도 안되어보이는 여사장이 보인다. 목수란다. 낮에는 공방에서 일하고 저녁에 취미로 가게를 한단다. 회사 다니다 너무 똑같은 일상이 싫어서 평소에 취미로 하던 목공예를 직업으로 선택했단다. 몇마디 나눴을 뿐인데 어느새 누나라는 호칭이 사용되고 있었다. 재밌는 사람이다.

 

사실 요즘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 술을 안마시니 살이 쭉죽 빠지는데 내가 얼마나 해로운 지방덩어리들을 안고 살았나... 후회를 하고 있다. 맥주 한병 시켜놓고 편히 이야기할 수 있을거 같더라. 다행히 같이 간 친구도 마음에 든단다. 비싼 수입 맥주 꺼내먹었는데 만원만 달란다. 오늘 공돈 생겼다고 더 꺼내 먹으란다. 눈치 보여서 어디 가겠나. 호의는 받으면 되는거고 외상은 갚으면 된다는게 신조라 정말 만원 내고 나오긴했다. 어쨌든 굉장히 편안해지는 곳임은 분명하다.

 

 

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왕선재 감독

http://www.fcdaejeon.com/board/board.php?board=g_news&pagetype=view&num=4831

 

왕선재 감독이 대전 시티즌의 5대 감독으로 임명됐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 미리 결과를 알고 있어서 크게 놀라진 않았으나 의외의 결과가 나지 않아서 다행스럽다.

 

왕선재 감독의 장점은 선수단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세심한 모습이 선수들을 매료시킨 모양이다. 문제는 선수들이 나태해질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점은 좋은 수석코치를 임명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공오균 선수나 강정훈 전 주장을 영입하는게 어떨까 싶다. 누구보다 대전의 사정을 잘 알고 팀 컬러를 대변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라고 본다.

 

왕선재 감독의 단점은 전술상의 미숙함이 있다는 점이다. 감독 경력이 있다고는 하나 K 리그에서 살아남기는 녹록치 않다. 성남은 깨뜨린 3-5-2 포메이션이 막히고 한동안 난항을 겪었던 점이나 상암 원정에서 무리한 공격을 시도하다가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점 등은 그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점은 시행착오로 볼 수 있고 노력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왕선재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2010년 대전의 비상을 기대하며.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Koop - I See A Different You

알고 있는걸 다 써내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분명 허술하지만 나름의 논지를 세워갔으나 반도 풀어내지 못하고 시험 종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는 알고 있다. 다만 그 짧은 지식이라도 명확히 풀어내지 못했다는게 안타깝다. 의표를 찌르는 기가막힌 논리나 물 흐르듯 유연한 전개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준비해 간 것을 막힘없이 풀어냈어야 했다.

 

이미 지나간거 뭐 어쩌겠나. 잊어버려야지. 아 떠나고 싶다. 학교고 여자친구고 취업이고 잠시 잊고 어디든 다녀오고 싶다. 많이도 안바라. 딱 일주일 정도만? 아직 면허도 없긴하지만, 고물차 한대에 대강 옷가지와 취사도구 실고 음악 크게 틀고 구불구불 난 해안길을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 햇살 따뜻한 날에는 이 곡을 들어야지.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근데 안될꺼야 난 ㅋ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Workshy - But Alive

오늘 난 뭐했나. 느즈막히 일어나서 이불 빨래를 해서 잘 드는 볕에 말려서 뿌듯해하다가 문득 시험 기간임을 깨닫고 책 좀 훑어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끔찍히도 재미없는 영화 한편을 봤다. 그러다 벨소리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다 5시에 성남 vs 수원 빅매치가 있음을 깨닫고 축구를 보고... 무슨 맛인지도 모를 비빔밥을 해먹은 후 멍하니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아직 위를 완전히 통과하지 못한 비빔밥의 촉감이 느껴지는데 해야할 일들이 많다고 끊임없이 뇌가 재촉한다. 소화 좀 시키고 하자라고 토닥거리려고 해도 도무지 들어주질 않는다. 오늘 하루 정말 뭐했나. 낮에는 공부는 원래 해 떨어져야 하는거라고 핑계를 댔고 저녁에는 주말은 쉬는거라고 핑계를 대고 있으니. 나같은 인간형을 '잉여' 혹은 '의지박약'이라고 부르는걸까? 어쨌든 이제는 해야겠다. 이거만 듣고...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차기 대전 감독에 관하여

김호 감독이 퇴출되고 왕선재 대행이 감독직을 맡고 있는데 올 시즌 남은 경기는 세 경기. 시즌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공석에 있는 감독직을 빨리 채워야하는데 팬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1. 신임 감독을 원한다.

 

왕선재 대행은 김호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인물로 또다시 모 에이전트와의 잡음이 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신임 감독을 원하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또한 왕선재 대행의 커리어가 국내 프로팀을 맡아본 일이 없기 때문에 흔들린 팀의 근간을 세울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점도 덧붙인다.

 

2. 왕선재 '감독'을 원한다.

 

김호에서 왕선재 체제로 팀이 변화하면서 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졋다. 안좋은 상황에서 흐름을 타서 울산이나 성남을 깨뜨렸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현재 왕선재 대행이 어떤 축구를 팬들에게 보여주려 하는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건 오히려 김도 체제일 때보다 더 긍정적인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올 시즌 대전의 누적 관중수는 밑에서 두번째를 달리고 있다. 비단 성적이 나빠서 뿐만 아니라 매번 스포츠 뉴스란을 뒤덮는 안 좋은 소식이 팬들의 발길을 끊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내년까지 새로운 감독이 와서 리빌딩이라는 명목 하에 팀을 흔들면 관중들은 정말 팀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관중들은 냉정하다. 축구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여가 컨텐츠들이 즐비한 현대 사회에서 한번 그들의 관심을 잃으면 프로 축구단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아무쪼록 빠른 시일 안에 감독을 선임했으면 한다. 올 시즌 드래프트로 건진 신인들의 퀄리티는 요 근래에 최고다. 장기계약한 외국인 선수도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선수들이 왕선재식 축구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본다. 이제 대전 전력의 문제는 몇몇 포지션 보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오게 됐다. 왕선재 '감독'이 내년 시즌 대전을 이끌었으면 한다.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쌍방향 창작?

http://cartoon.media.daum.net/series/view/iskra/35

 

다음에서 <이스크라>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이충호 작가가 독자들의 의견을 작품에 반영하겠다고 선언, 등장인물의 생사를 독자 투표로 결정하겠다는데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에 한 독자는 창작물에 수용자들의 입김이 작용하게 되면 작가는 아우라를 잃는다 라는 의견을 골자로 해서 이런 이충호의 창작 방식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작가란 무엇인지, 혹은 그들이 갖는 권위는 어느정도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수십여년간 되어와서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창작품을 완성시킨 사례들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런 식으로 작가가 작품의 내용이나 전개과정을 결정하는데 있어 팬투표라는 적극적인 수단을 시도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웹2.0 이라는 흐름은 이제 너무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서 쌍방향적 매체의 영향력을 간과한다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포스트 모던이란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숭고한 영역으로 간주되는 분야에까지 매체의 영향력이 작용하게 됐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라디오, TV를 지나 인터넷, IP TV 등 다양한 매체가 커뮤니케이션 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이로인해 새로운 예술 경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예술가는 창작품이라는 매계체를 통해 수용자와 소통한다. 여지껏은 그 소통 과정이 일방향적이었기에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지킬 수 있었고 예술이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언어로 구성된 탓에 비평가라는 매계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웹이라는 열린, 쌍방향적 소통이 가능한 매체를 통해 예술가와 수용자가 끊임없이 소통한다면 이제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그 독립적 지위를 박탈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주제의식과 메시지들은 비평가라는 매계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수용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며 수용자들이 텍스트를 오역하는 일이 발생하면 이에대해 작가는 빠르게 피드백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아직까지도 예술가들과 자신이 소위 고급 문화 생활을 영위한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은 예술의 격조 높은 존엄성을 들며 예술계의 질서를 구축하려 해왔다. 이충호 작가의 이런 시도가 예술가의 자존심을 버리는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새로운 경향을 시도했을 뿐 예술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본연의 아우라를 잃은 것은 기술복제시대의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쌍방향성이라느니 해체라느니 탈구조라느니 21세기를 수놓았던 낱말들의 등장과 함께 이미 작가는 그 위상을 잃었다. 이것은 현상이며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애써 현상을 모르쇠하는 것은 어리석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쌓아온 많은 정신적 유산을 무너뜨리고 해체해왔다. 예술도 예외일수는 없다. 단, 인간이 만들어낸 그 도구를 이용해 한차원 높은 상부구조를 이룩하느냐가 이 시대 예술계가 갖게될 유일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이충호 작가의 이런 시도는 이런 예술계의 고민에 한가지 대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